여성 혐오 살해 사건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정리
life | 2016-05-22
워낙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서 심한 말이 오고가는 모습을 많이 봐서 내 미숙한 생각을 블로그에 정리해 올리는 것이 사실은 조금 두렵다. 하지만 겉으로는 이렇게까지 신경쓰고 싶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며칠간의 내 행동은 정 반대였기 때문에 생각을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기사를 봤을 떄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저지른 행동이라는 점이 충격적이었다. 내 주변의 누구라도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범행 장소나 수법을 봤을 때 치안과도 무관해서 피하거나 예방 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회사에서 이 사건에 대해서 가볍게 얘기가 오고갔는데 동료의 반응은 '무섭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그 무섭다는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 정확히 몰랐다. 그냥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구나 정도의 생각이었고 내 관심은 수사 진행 등 다른데 있었다. 몇시간 뒤에 범행 동기가 '여자였기 때문'이라는 기사를 접했지만 처음에 느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강남역 10번 출구에 추모하는 글들이 붙었다는 기사를 읽었을 때도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럴수 있겠구나. 무서울 수 있겠구나. 사람들이 추모를 하는구나. 공감을 많이 하는구나. 그정도였다.
문제는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서 '일반화'하지 말라는 반대 세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나서 였다. 미서지니(misogyny)라는 처음보는 단어도 나오고 원색적인 비난인 경우도 있지만 논리 정연한 토론글들도 간간히 볼 수 있었다. 페이스북, 트위터 타임라인은 몇몇 분들 덕분에 이 이슈로 도배가되고 많은 공부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상대할 가치 없는 배설은 빼고 올라오는 거의 모든 글을 다 읽었다.
처음부터 일반화에 대한 거부감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일반화를 외치며 매도하지 말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사안의 본질을 꿰둟치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도 만나봤고 고민도 많이 했기 때문에 어느정도 본질을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글을 읽으면 읽을 수록, 함께 얘기해 달라는 만화를 보고, '내가 지켜줄께'라는 말은 공감하지 못한 말이라는 글을 보고, 관련 전공 교수도 이 현상을 바로 인지하지 못했다고 하고, 여성 혐오에 대한 설명을 읽고, 정신병력 보다는 사회적인 맥락을 살펴봐야 한다는 글을 보고, 언니네 이발관 이석원의 글을 보고, 여성학자인 권김현영 성공회대 외래교수의 글을 보고 내 생각에 자신이 없어졌다.
내딴에는 모든 사람을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려고 노력하고 잘 해오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실제로 그렇지 못한 경우도 굉장히 많았고 무관심내지는 회피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결국 그러한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지만 나역시 권력에 취해있고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잠재적인 가해자'라는 말에 상당히 공감한다.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주장도 있지만 현재와 같은 상황을 만든데 자의든 타의든 일조한 것은 사실이고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 누구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는 없고 결국 우리 모두가 노력하고 짊어지고 가야할 과업이라는 현실을 인식을 하게 해주는 표현이라고 본다. 제대로 인식을 한 다음에서야 적극적인 행동이 가능해질 것이다.
과연 내가 부적절한 상황에서 제지를 가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아니 아마도 하지 못 할 것이다. 부적절한 상황을 제대로 인식이나 할 수 있을지 조차 자신이 없다. 아마도 상당 부분은 느끼지 못 할 것이다. 이미 권력의 상층부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역지사지가 되지 않을 것이다. 서울시에서는 남녀 공용 화장실 실태조사부터 시작한다고 하는데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 할 지라도 좋은 시작이라고 본다. 하지만 역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너무나 만연해 있는 것을 알기게 감히 변화시킬 수 있겠다는 상상조차 들지 않는다. 무기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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